<왜 책을 읽는가?>
어떤 방식으로도 우리는 교양을 쌓아야 하며 이를 위해 우리는 지속적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 전에 읽은 시적 정의와 바칼로레아 철학 책에는 큰 공통점이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사회적 약자를 포함하여 소외된 자의 입장들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작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 것은 바로 전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개인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교육정책일지라도 교실 하나하나, 학생 한명 한명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소용없는 정책이 될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다양한 시각을 갖출 수 있을까?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이 책들에서 제시하는 해결방법은 바로 문학을 읽는 것이다. 문학작품은 우리가 만나지 못하는 다양한 개인을 만나게 해준다. 그리고 시각을 넓게 해준다. 물론 문학으로만 해결한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 마시라.(실제 자신이 사회적 약자이거나 소외된 자라면 어떠할지는 고민해야한다.)
조르주 상드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문학을 연구하는 것은 인간을 연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글을 읽는 것과 분석 이해하는 것, 또 직접 쓴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 일인지는 차지하더라도, 문학책을 읽는 것은 사치가 아닌 생활이 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우리는 교사로서 아니 시민으로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시민(학생)을 이해하는 마음을 갖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왜 따뜻한 지성인을 찾기 어려울까? 최근 인간성이 없는 지성인들이 여기저기 넘쳐나고 있다. 정치판에서 대학에서 문학작품에서 사설에서 페북에서도..
보통 지성이란 인간성을 결정하는 기본 요소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종의 “특수한 것”, 소수만이 추구할 수 있는 일종의 “고상함”으로 느껴진다. 논리적인 사람, 지적인 사람에 대해 왠지 모를 불안감과 위협을 느끼기까지 한다.
최근 대중매체에서도 어수룩하고 실수하는 사람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반면, 똑똑하게 자기 의견을 펼치는 사람은 오만하다는 야유를 받는다. “배운 놈들”이란 표현이 말해주듯, 대중의 엘레트에 대한 인상은 이토록 부정적이다. 심지어 똑똑한 지성인의 이야기를 예능으로 승화시키는 프로들도 있다. 존경할 만한 지적 엘리트가 많지 않다는 것. 그것이 혹 지성에 대한 우리의 경계심을 만든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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