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막상 들어와 보니 듣던 거와 딴판입니다.
분명히 교사는 정시 퇴근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어찌하여 저는 주중에 두세 번 이상을 야근으로 몸을 불 살라야 하는 겁니까. 분명히 교사는 하루 수업 몇 시간만 하면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편한 직업이라고 들었는데 왜 퇴근 시간 가까워지면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천근만근 나락으로 떨어질 듯 무거운 것입니까. 다들 이 직업이 육아나 가사와 충분히 병행 가능하다고 떠드는데 집에만 오면 그대로 쓰러져서 한두 시간 기절해 있다 깨어나는 저는 뭡니까.
그때서야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직이라는게 편하지도 않고, 쉽지도 않습니다. 하루 온종일 뛰어다녀야만 합니다. 온갖 공문은 끊임없이 쏟아져 내려옵니다. 그것도 '긴급' 이라는 꼬리표를 달고서요. 수업이 잠시라도 비는 틈이면 아이들은 쉬지 않고 찾아와서 지지배배 천만 가지 요구를 합니다. 더하여 가끔 이루어지는 학부모와의 통화는 교직 생활을 전혀 심심치 않게 해주기도 합니다. 기함을 하는 경우가 꽤 있거든요. 쉬는 시간에 공문 처리하다가, 수업 들어갔 다 나와서 행정업무 보다가, 아이들 상담하다가 보면...... 이미 퇴근 시간은 훌쩍 지나 있는 걸 발견합니다.
회사 다니느라 허덕거리던 시절에는 교직에만 들어오면 야근 따위 안해도 될 줄 알았습니다. 현실은 달랐습니다. 저의 하루는 언제나 미카엘 엔데의 소설 '모모' 에 나오는 '시간 도둑' 이 훔쳐 간 것처럼 깔끔하게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심지어 회사 다니던 때와 비교해보면 단위 시간당 업무강도는 훨씬 센 거 같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바로 널브러지거든요.
그리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교직의 하루는 훨씬 더 역동적이고 분주하며 정신없다는 것을요. 저는 몰랐던 거지요. 교사인 사람이 없는 집안에서 자랐고, 사범대를 나오지 않았으니 친구들 중에도 교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니 교직에 발을 딛기 전까지 흔히 말하는 '남'의 시각으로 교직을 보고 있었을 겁니다. 아마도 교사가 되기 이전의 제 생각은 우리 사회가 교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편견 그대로였을 겁니다.
그때부터 보이기 시작합니다. '광인이 머리 풀고 널뛰 듯' 하는 저의 하루만이 아니라 바로 옆자리에 있는 같은 학년 또는 다른 학년의, 혹은 같은 교과나 다른 교과의 동료 선생님들이요. 눈에 띄지 않고 주의를 끌지도 못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눈물겹고 치열한 '하루'가 보입니다. 그 속에서 무엇이 교육인가에 대해 고민하며 갈등하고, 다양한 상황에 부대끼면서 하루를 살아내는 교사로서의 '삶'이 보입니다.
맞습니다. 교직이 그러합니다.하루 종일 동동거리며 몸은 녹초가 되는데, 막상 무엇을 했냐고 물으면 갑자기 말문이 막힙니다.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어떻게 보냈는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돌아보면 눈에 보이게 이루어진 것은 없습니다. 아이들은 자라서 학년을 올라가고 그리하여 졸업을 하고 분명히 성장을 했는데, 교사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머물러 있습니다. 일반 회사처럼 지위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했다고 성과급이 보태지는 것도 아니며, 대부분의 교사들이 외부 단체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어디다 내밀 수 있는 명함 한 장 없습니다. 몇십 년을 교직에서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았지만 내놓을 그럴듯한 건 아무것도 없는 거지요.
저는 비로소 교사들을 존경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아이가 성장하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막상 그 아이들을 키워내는 교사는 보이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렇기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승진도 지위도, 부와 명예도 없이 묵묵히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료 선생님들이 제 심장을 두드립니다. 열심히 한 시간들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 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성장한 아이들은 냅다 뛰어나가서 그 뒷모습만 바라보는 교직의 이름 없는 동료 교사들이 이제야 가슴에 시리게 다가옵니다.
그러면서 동료 교사분들을 돌아봅니다. 교실에서 실망하고, 때로는 민원 전화 한 통에 하루 종일 우울해하며, 현장을 알려고 하지 않는 교육정책 앞에서 아주 자주 좌절하는 모든 선생님 들을 마주 봅니다. 척박한 교육현장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력하는 교사'가 되려는 꿈을 꾸고 있는 모든 동료 선생님들에게, '완벽하지 않을 용기'로 함께 가자고 응원합니다.
이의진 <아마도 난 위로가 필요했난보다> <어떤 곳에서도 안녕하기를>
12월에 만나요. 존경하는 선생님.
jjangssam
2024.05.23교생실습 지도하면서 다시금 북톡에 들어와 선배님의 이야기를 다시읽고있습니다. 읽고 또 읽을 수록 마음에 깊이 다가오네요..그리고 다시 나의 하루와 삶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되세요~